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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회복지발달사

빈민법 시대 (1)

by 지식오아시스 2014.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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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법 시대 : 빈민법

봉건사회의 계급

봉건사회의 지배층은 귀족과 젠트리(gentry, gentleman의 집합명사)와 같은 지주귀족들이었다. 귀족은 공작(duke, 가장 높은 직위의 왕실 혈통 귀족), 백작(earl), 후작(marquis), 자작(viscount), 그리고 가장 많은 수의 남작(baron)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귀족 바로 다음 층인 젠트리는 대지주들로서 일부는 기사(knight)작위를 갖고 있었으며,자신의 영지에서 법과 질서를 지키는 임무를 갖고 있었다.

■봉건사회의 피지배층은 농민과 장인이었다.
■농민은 농노, 오막살이농(cottar, bordar), 노예(serf)로 층화되어있었다. 일부 자유농(freeman)이 있었다.
■농노와 오막살이농은 영주에 대해 부역(day work)과 임시부역(boon work)의 의무가 있었다.
■자유농은 농번기를 제외하고는 부역의무는 없이 지대만 납부하면되었다.
■장인은 대장장이, 목수, 방아꾼 등이었는데, 이들도 약간의 농지를보유하고 있었다.

■1485년 튜터 왕조로부터 절대왕정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장미전쟁을 통해 정통성을 확보한 튜터 왕조는 중앙집권화와 관료화, 그리고 종교개혁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민족주의(nationalism)를 확산시켰다.
■튜터 시대에 들어 사회구조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즉, 농노제의해체와 젠트리의 득세가 그것이다.
■젠트리는 광대한 토지의 경작과 인클로저(enclosure)를 통해 농업자본가로의 길을 걷게 되고 영국 자본주의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인클로저와 부랑자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인클로저(enclosure)는 16세기 국제적인 양모가격의 상승으로양 목축업이 호황을 누리자 지주들이 자신의 농토와 공유지를양 목장으로 바꾼 것에서 시작하여 19세기 초까지 파상적으로
계속된 농토와 공유지의 울타리치기를 말한다.

■토지가 경작지로 사용되면 많은 농업노동력이 필요 하지만, 양 목장으로 전환되면 소수의 목부 들만 있으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수의 농민들이 농지에서 쫓겨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공유지의 울타리치기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층은 날품팔이와 영세소농이었다.
■이들은 공유지에서 자신의 소와 돼지와 양을 키워 부족한 생계비를보충했었다.
■인클로저는 이들 가난한 농민들의 생활근거를 빼앗아 부랑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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